제 682 호 [기자석] 갈라선 촛불, 빼앗긴 광화문… “광장을 되찾아라”
올 하반기 뉴스를 뜨겁게 달군 것은 서초동과 광화문의 싸움이었다.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서초동 촛불집회와 문 대통령과 조국 전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광화문 태극기집회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태극기집회에 돈을 지불받고 참여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지긴 했으나 규모와 정치적 의의를 살펴보았을 때 그렇게 단순하게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태극기 집회를 목격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연령대가 전반적으로 높긴 하지만 젊은 사람들도 곳곳에 섞여 있었다”고 말했다.
정치 집회의 흐름은 매우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다. 본래 한국 사회에서 집회라는 행위 자체는 ‘진보’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독재정권 하 학생운동부터 시작해 ‘효순이 미선이’, ‘노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미국산 소고기 수입·4대강 반대’, ‘국정원 선거개입 진상규명’, ‘박근혜 탄핵집회’까지 이어지는 계보와 매년 진행되는 전국노동자대회가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2017년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진보’라는 정치성이 변질되었고 태극기집회가 광화문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광화문의 공간성이 뒤틀렸다. 2019년 문 대통령이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이러한 갈등과 모순이 폭발했다. 촛불에 참여한 정치세력의 일부는 서초동·여의도로 자리를 옮겼고 태극기 세력은 광화문의 빈자리를 점령했다.
오히려 촛불집회에서 진보적 의제를 던지고 함께 싸웠던 청년, 노동자, 여성 등은 자리를 잃고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다. 특히 청년은 조국 전 장관과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박탈감’이라는 이름 아래 정치적으로 소모되었고, 이들에게 캠퍼스마저 빼앗겼다.
혹자는 촛불을 ‘혁명’이라 추앙하지만 막상 무엇이 바뀌었는지 면밀히 살펴보면 혁명이라 칭함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자 자기기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굶어죽는 사람, 내쫓기는 사람, 노동현장에서 사망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2016년 촛불의 핵심 의제였던 지소미아는 아직 폐지되지 않았고, 문희상 의장은 박근혜 정권의 ‘위안부 합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세월호 참사와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진상규명도 진척이 미미하다.
2019년 11월 31일 토요일, 광화문에서 2개의 집회, 여의도에서 1개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광화문에서는 태극기가 빼앗은 광장을 되찾고자 하는 ‘민중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촛불집회에서 갈라선 친문성향의 여의도 집회 구호는 “공수처 설치, 검찰개혁, 윤석열 사퇴, 자유한국당 해체”이다. 함께 촛불집회를 지키고 있었던 민중대회 구호는 “문 정권 규탄, 자유한국당 해체, 노동개악 반대, 지소미아 폐지, 빈민·농민 해방”이다. 한편 광화문 한쪽의 태극기집회 구호는 “문재인 규탄, 공수처·연동형 비례대표제 반대, 자유민주주의 수호”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세 집회의 구호를 벤다이어그램으로 나타냈을 때 모두 교집합을 가진다는 것이다. 여의도와 민중대회는 ‘자유한국당 해체’를, 민중대회와 태극기는 ‘문 정권 규탄’을 이야기하고 있다. 각기 다른 목적과 근거를 갖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현 대한민국의 광장정치는 단순 진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민중대회는 광장에서 소외되고, 광장을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민중들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양분하고 있는 극단적 양당구도를 깨고 광화문이라는 상징적 정치공간으로 뛰쳐나왔다. 2016년 촛불은 전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희망적 결과를 내포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진보’를 자처한 민주당 세력이 집권하는 결정적 계기로서 작용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광화문 세력은 갈라섰고, 민중은 광화문을 보수 세력에게 빼앗겼다.
2019년 전국노동자대회와 민중대회는 광화문을 되찾는 민중의 시도였다. 촛불집회에 대한 본질적 반성은 삶의 현장으로 촛불의 열기를 옮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동자와 빈민에게 여전한 고통이 가해졌고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 역시 여전했으며, 청년과 청소년도 정치적으로 이용될 뿐이었다. 2016년 광화문 광장을 차지하고 있던 우리 대학생들에게, 수능을 앞두고 광장으로 나섰던 나에게 캠퍼스에서 정치적 참여를 할 수 있는 공간이란 없었다.
광화문은 한국 정치의 역사다. 광장은 시민의 정치참여 무대이다. 그러나 지난 2년 간 광화문은 정치공학의 산물로 변질되었고 시민들에게 있어 ‘피하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 광장을 되찾아라. 소외된 이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이는, 다시 한 번 뜨거운 촛불을 치켜 올리는 순간을 되찾아라.